포스테키안

2018 여름호 / 포스텍 에세이 / 포스텍 일반생명과학 강의를 소개합니다

2018-07-12 147

포스텍

일반생명과학

강의를 소개합니다.

이승우 생명과학과 교수

매년 입시철에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면접을 할 때면 가끔 학생들의 최신 생명과학 상식에 깜짝 놀라곤 한다. “크리스퍼와 같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서 말라리아를 옮기지 못하는 모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유전자 지도와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이 완성된 지금, GMO를 이용한 식량 품종 개량이 고전적인 육종에 비해 훨씬 이득 아닐까요”, “암 세포만 골라서 죽일 수 있는 CAR-T 세포를 만든다면 획기적인 암 치료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생명과학을 어언 25년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도 쉽지 않은 최첨단 생명과학 지식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학생들이 입시를 통과해서 포스텍에 들어온 후 다시 한 번 놀라는데, 이번엔 학생들이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생명의 기원은 무엇일까?”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에는 정작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발견할 때이다. 생명과학은 우리 스스로가 생명체로서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므로 무척 친숙하다고 느끼기 쉽고, 상상만으로도 환상적인 최첨단 생명과학 지식조차도 익숙한 듯한 착시현상을 준다. 하지만 생명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지식의 향연에 취하기보다 우리 옆에 항상 존재하는 생명체 안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가서 생각해 봐야 한다.

생명과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현실이 되기엔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 최첨단 지식을 ‘아는 척‘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보다, 우리가 주변에서 익숙하게 보고 있는 자연(생명) 현상을 과학의 눈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호기심에 기반한 사고가 훨씬 더 중요하다. 글쓴이는 포스텍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일반생명과학 아너(Honor) 클래스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과학의 눈으로 생명을 좀 더 깊이 이해하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어 이런 에세이 문제들을 숙제로 내주곤 했다.

“큰 열대우림 나무는 하루에 최대 1200리터의 물을 사용한다고 한다. 나무를 포함한 식물에서 물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광합성 과정 때 1 분자의 CO₂를 흡수하기 위해(탄소 고정) 약 400여 개의 물(H2O) 분자가 사용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여러분들은 이미 물이 식물에서 이동하는 원리에 대해 배웠을 것이다. 식물은 모세관 현상(capillary force), 증산작용(transpiration), 삼투현상(osmosis)을 통해 물을 이동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모세관 현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최대의 높이는 채 1미터를 넘기 힘들고, 또한 잎이 채 돋아나기 전 이른 봄에 뿌리가 힘차게 끌어올리는 물은 증산작용 없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계절이 변해서 가을이 되면 또 이런 문제를 냈다.

“포스텍 교정에 나무들이 단풍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대부분의 잎에서 일정한 패턴을 관찰할 수 있다. 본인이 관찰한 단풍의 패턴은 무엇인가? 그것이 과학적으로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지, 잎의 광합성 효율과 어떤 연관 관계를 갖는다고 생각하는가? 또한 단풍잎에서 이러한 계절적인 변화가 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지 식물의 생리를 고려해 생각해 보시오.”

많은 생명과학 질문은 대상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상은 때론 단백질 결정과 같은 매우 작은 물질부터 세포나 동식물이 될 수도 있다. 호기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 보고 생각해 볼 때 비로소 생명은 그들이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할 단서를 보여준다.

두 번째 에세이 문제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이런 코멘트를 줬다.

“에세이 작성한 것들을 봤는데 다들 기대 이상으로 잘 작성했습니다. 대부분 잎의 가장자리부터 단풍이 드는 현상이나, 나무 전체에서는 제일 위쪽 혹은 볕이 잘 드는 쪽부터 단풍이 드는 것, 침엽수의 경우에는 패턴과 관계없이 일부만 단풍이 드는 현상들을 관찰했습니다. 엽록소와 이를 둘러싼 다양한 광합성 관련 단백질들이 서로 연관되어 그 발현이 조절된다고 생각할 때, 이렇게 단풍잎에서 일종의 기울기(gradient)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분명 특정 신호의 ON/OFF 상태가 존재할 거라는 상상을 하게 합니다. 여러분들이 유추한대로, 물의 공급, 평균 온도, 햇빛의 흡수, 식물호르몬 정도, 계절의 리듬 등 이러한 신호들이 유전자 및 단백질 수준에서 복잡하게 관여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내가 이 분야를 전공하지 않지만 해마다 가을에 단풍을 보면서 이러한 과학적 상상을 할 수 있고, 맘만 먹으면 실험으로 증명해 볼 수 있는 그런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과학자들입니다. 세상에 다른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단풍이 뭐가 중요하냐고 타박해도, 자연 현상의 경이로움을 알아가고 또 응용해 가면서 이루어진 과학자들의 위대한 발견들이 세상을 바꿔왔고 또 미래에도 당연히 그럴 겁니다. 특히 생명과학은 수업 때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스스로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생명 현상을 과학적 언어로 상상하고, 그로 인해 우리 삶의 새로운 존재론적 이유에 다가가게 한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이 또한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실험실 안에서 이승우 생명과학과 교수와 조교들의 이미지

“자연 현상의 경이로움을 알아가고 또 응용해가면서

 과학자들의 위대한 발견들이 세상을 바꿔왔고 또 미래에도 당연히 그럴 겁니다.”

일반생명과학 강의를 진행하면서 항상 빼지 않는 주제는 ‘생명의 기원과 진화’다. 생명 현상을 그 무엇이라도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놀랍게도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의 모든 범주에서 그 근본적인 작동 방식이 같다는 사실을 필연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의 시원을 찾아가는 것이 때론 하릴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 그 시도는 생명 현상의 핵심 원리를 헤아리게 한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여러분은 우리 인간의 DNA를 복제하는 효소들이 놀랍게도 다른 동물, 식물, 심지어 세균과 바이러스까지 비슷한 작동원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가? 즉, 생명은 태초에 탄소화합물인 유기체로 조직되어 어느 순간 ‘스스로 정보를 복제함으로써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해 나가는 일종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세균과 같은 단세포 생물이 아득한 시간을 통해 진화해 나가면서 복잡한 다세포 유기체 생물의 정점인 인간과 나무와 같은 동/식물로 변화했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우리 주변엔 여전히 오랜 세월 동안 거의 변화 없이 마치 태어난 그 상태로 지속한 것처럼 느껴지는(사실은 항상 변화하고 있음에도) 다양한 미생물들이 함께 존재한다. 소위 고등 지적 생명체인 인간인 우리가 지구에 이룬 놀라운 성취들은, 우리가 햇빛과 물 그리고 이산화탄소만으로 당과 산소를 만들어 내는 식물과 일부 미생물들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때론 망각하게 한다. 또한 이런 식물들의 광합성과 에너지 생산이 거의 세균의 방식을 조금 변형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르면, 이 지구를 둘러 싼 생명들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존의 세상을 살고 있으며, 공존 그 자체가 생명의 유일한 적응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생명과학은 우리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이러한 생명의 놀라운 작동원리들을 과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생명의 작동을 과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추상적인 이념/진리/종교보다도 더 명명백백해서, 우리가 생명체로 세상을 보는 폭넓은 시선을 갖게 한다. 자연의 섭리와 더불어 그 안에 나와 나를 둘러싼 다른 생명체들 모두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똑같이 소중하다는 엄중한 생명의 진실에 이르는 것이다.

미래는 바이오산업이 새로운 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다. “내가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싶다”는 빌 게이츠의 말처럼 바야흐로 생명공학의 새로운 물결이 몰려오는 것은 이 분야 연구자로서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부터 제대로 알고 공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동일 선생의 저서 <라틴어 수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옮겨본다. “인간은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영원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나는 그저 ‘지금, 여기에서’ 고통스러우나,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보면 그저 흘러가는 한 점과 같을 겁니다. 그것이 현실이라면 스스로 더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사라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하고, 우리 앞에 놓인 빈 공간을 채워갈 뿐입니다.” 이 영원의 시간을 헤쳐 나온 생명의 연속을 겸허히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근처로 다가갈 수 있는 열쇠를 얻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생명체로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므로, 생명의 연속이 선사한 멋진 삶을 그대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우리와 함께 이 여정에 동반하는 다른 생명들에게 감사할 것이 아닐까. 포스텍 일반생명과학 수업에서 호기심 가득한 여러분을 만날 수 있기를!

글/ 이승우 생명과학과 교수